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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 ‘문명 1’, 진화심리학으로 읽다

by info0171 2025. 11. 5.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문명 1』은 인류 문명의 시작을 다루면서도, 단순한 역사 서사가 아닌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그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 사회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무너지는지를 탐색하며, 독자로 하여금 문명이란 무엇이며, 왜 인간은 그것을 반복해서 만들고 파괴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번 글에서는 『문명 1』을 진화심리학의 시선으로 분석하며, 본능, 생존, 권력 욕구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작품을 해석해본다.

생존 본능의 사회화: 문명의 기초

『문명 1』의 주요 배경은 현대 문명이 완전히 붕괴된 이후의 세계다. 이 잿더미 속에서 인류는 다시 공동체를 구성하고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가려 한다. 베르베르는 이 과정을 단순히 상상적 재건으로 그리지 않고,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생존 본능의 사회화’로 풀어낸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생존을 위해 무리를 이루고, 자원을 나누고, 질서를 만든다. 이는 수천 년간 반복되어온 진화의 산물이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식량을 확보하고 외부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집단을 형성하고 역할을 분담한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협력과 경쟁의 균형'이라는 인간 본능의 표현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이 타인과 협력하면서도 동시에 우위를 점하려는 이중적 본능을 가진다고 설명하는데, 『문명 1』은 이러한 이중성을 정교하게 묘사한다. 공동체 내에서 발생하는 갈등, 지도자를 향한 집단의 기대, 배신과 충성 사이의 긴장은 모두 생존을 위한 심리적 적응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베르베르는 이러한 원시적 감정들이 어떻게 문명이라는 틀 안에서 제도화되고 문화로 진화하는지를 문학적으로 표현하며, 인간의 사회적 본능이 문명의 기반임을 시사한다.

권력 욕구와 계급의 형성

문명이 발전할수록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권력'이다. 『문명 1』에서는 초기 생존 중심의 집단이 점차 체계를 갖추며 리더십, 권위, 계급이 등장하는 과정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린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권력 욕구는 인간의 생존과 번식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본능이다. 베르베르는 이러한 권력 본능이 어떻게 제도화되는지를 작품 속 여러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지도자는 단순한 생존 기술자에서 점차 이념을 말하고 규범을 정하는 존재로 변화한다. 이는 인간이 단순히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이 아니라, 본능을 바탕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계급의 형성은 무력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지적 우위, 언어적 설득력, 심리적 영향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지도자와 추종자의 구조를 만든다. 베르베르는 이러한 인간 군집의 심리를 매우 치밀하게 구성하며, 권력을 갖기 위한 욕망과 그것을 견제하려는 무의식적 행동을 교차로 배치한다. 특히 인물 간의 갈등 구조는 현대 정치와도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어, 독자는 이를 통해 현대 사회의 권력 구조와 본질적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문명 1』은 인간이 권력을 통해 문명을 세우고, 그 권력 때문에 문명이 다시 무너지는 순환 구조를 진화심리학적 통찰을 통해 서사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감정 조절과 문화의 진화

『문명 1』에서는 감정, 특히 분노와 두려움이 어떻게 억제되고 조절되는지를 중심으로 인간 사회의 ‘문화화’ 과정을 보여준다. 진화심리학에서는 감정이 인간 행동의 중요한 유인으로 작용하며, 특히 위험 회피와 사회적 연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베르베르는 문명 형성 초기 단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감정을 억제하고,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며, 집단 내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규범을 만들어가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폭력적 본능에 충실하려는 유혹과 집단 내 조화를 위한 자기통제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언어의 발달, 신화의 형성, 금기의 설정 등은 모두 감정 조절의 문화적 장치로 기능한다. 베르베르는 감정이라는 생물학적 본능이 어떻게 상징과 제도로 진화하는지를 보여주며, 문명이란 본질적으로 ‘감정의 길들이기’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진화심리학적으로 감정 조절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적응 기제다. 즉,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고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문명 1』은 이러한 측면에서 감정과 문명의 상관관계를 문학적으로 풀어낸 보기 드문 작품이다. 감정의 표현이 곧 문화가 되고, 그 문화가 문명의 기초가 되는 과정을 통해 베르베르는 인간 진화의 또 다른 측면을 조명한다.

『문명 1』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특유의 상상력 위에 진화심리학적 통찰을 결합해, 문명의 탄생과 붕괴를 심층적으로 조명하는 작품이다. 생존 본능, 권력 욕구, 감정 조절이라는 인간의 근본적 심리를 통해 문명의 구조를 파헤치는 이 소설은, 우리에게 ‘왜 우리는 문명을 만들고, 또 무너뜨리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담긴 이 작품을 통해 독자는 자기 자신과 사회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