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웨이(2011)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배경으로, 한반도 조선 청년 ‘김준식’과 일본군 엘리트 장교 ‘하세가와’가 전장의 한복판에서 맞서고, 또 함께 살아남으며 관계가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 대작 전쟁 영화입니다. 두 인물은 허구의 캐릭터지만, 실존 인물 양경종의 삶에서 모티프를 얻은 김준식, 그리고 식민지 시기의 일본군을 상징하는 하세가와를 통해 복잡한 역사 속 인간 군상을 드러냅니다. 본 글에서는 김준식과 하세가와 두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의 성격, 성장, 관계 변화, 그리고 역사적 맥락 속 상징성을 비교 분석하여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심층적으로 조명해보겠습니다.
김준식: 억압된 식민지 청년에서 전장을 관통한 인간으로
김준식은 조선인 청년으로서 영화 속에서 식민지 현실을 살아가는 대표적 인물입니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그는 일본 제국의 억압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과 꿈(마라토너)을 지키려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는 사회적 차별, 민족적 멸시, 군국주의 아래 짓밟히며 점점 꿈을 잃고 현실에 적응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립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민족 서사 이상의 보편적인 인간의 삶의 변화를 상징하며, 그가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행동들 하나하나가 인간의 본능과 의지의 복합적인 결과로 그려집니다.
김준식은 전선이 바뀔 때마다 국적도 바뀌는 운명을 겪습니다. 조선인이지만 일본군으로 끌려갔다가, 이후 소련군의 포로가 되고, 다시 독일군에 편입되어 노르망디 전선에까지 이르는 그의 여정은 실제 인물 양경종의 삶과도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그의 경험은 일제강점기 조선 청년들이 겪어야 했던 무력함과 비극의 집약체입니다. 무엇보다 그는 영화 내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으며, ‘살아남는 것’ 자체를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삼습니다. 이는 단순한 신념이 아니라, 변화하는 역사 속에서 주체로서의 생존을 선택한 인간 김준식의 상징성과도 연결됩니다. 김준식은 영화의 말미에서 더 이상 누군가의 명령을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삶을 결정하는 인물로 탈바꿈하며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하세가와: 엘리트 일본군의 자존과 몰락, 그리고 변화
하세가와 타츠오는 일본 제국주의 체제의 상징이자, 영화 속에서는 명예와 계급을 중요시하는 일본군 엘리트 장교로 그려집니다. 그는 처음에는 조선인을 철저히 아래로 보고, 김준식을 비롯한 조선인 병사들에게 가혹한 명령을 내리는 전형적인 ‘가해자’로 등장합니다. 특히 마라톤 장면에서는 조선인에게조차 승리를 허락하지 않는 우월의식이 드러나며, 민족적 긴장을 극대화시키는 존재로 기능합니다. 그러나 영화가 전개될수록 그는 전쟁의 비극과 무의미함을 직접 체험하며 내면의 갈등을 겪고,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세가와는 자신의 명령 하나로 인해 수많은 병사가 죽어나가는 현실을 맞닥뜨리면서 ‘명예’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명분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 역시 소련군의 포로가 되고, 김준식과 함께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민족, 계급, 이념을 넘어선 ‘동료’로서의 인간성을 회복하게 됩니다. 특히 후반부에서 하세가와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김준식과 함께 살아남기를 선택하며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납니다. 이는 영화가 단순한 피해자·가해자 구도를 넘어, 역사 속에서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하세가와는 체제의 꼭대기에 있던 인물이 체제의 허상을 깨닫고, 개인으로서 책임과 감정을 회복하는 인물로 변화합니다. 이는 ‘가해자도 변화할 수 있다’는 다소 논쟁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영화는 이 인물의 변화가 현실의 정당화가 아니라 전쟁의 허망함 속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큰 틀에서 해석되기를 의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세가와의 변화는 김준식과의 관계를 통해 더욱 강조되며, 두 인물의 대조와 조화는 영화의 핵심 구조로 기능합니다.
관계 변화와 상징성: 민족 갈등에서 인간 연대로
김준식과 하세가와의 관계는 영화 전체의 주제와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축입니다. 처음에는 철저한 권력의 위계와 민족적 차별 구조 속에서 출발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함께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면서 두 사람은 점차 동등한 인간으로서 서로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우정'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도 인간은 상대를 이해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관계의 전환점은 소련 전선 이후입니다. 포로가 된 이후 두 사람은 생존이라는 같은 목표를 위해 협력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서로의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합니다. 민족, 계급, 언어가 달라도 극한 상황에서는 본능적으로 서로를 의지하게 되는 그들의 모습은, 전쟁이 낳은 '불편한 형제애'를 상징합니다. 영화는 이 관계를 과도하게 감상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절제된 감정선과 신뢰의 누적으로 그려내어 더 진정성 있게 전달합니다.
이들의 관계는 단지 개인 간의 우정을 넘어, 당시 동북아시아의 복잡한 역사와 식민 지배 구조,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압축적으로 표현합니다. 김준식은 식민지 피지배자의 상징이고, 하세가와는 제국주의 가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끝내 둘은 같은 인간으로 살아남고자 합니다. 이 서사는 관객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역사가 개인에게 남긴 상처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영화는 상처의 공유를 통해 화해와 치유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두 인물의 관계를 통해 인간성의 본질을 탐색합니다.
마이웨이 속 김준식과 하세가와는 단순한 주인공과 적대자가 아닌, 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 앞에서 변화하고 성장하며 인간다움을 회복해가는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그들의 삶과 관계는 역사적 갈등의 축소판이자, 개인이 어떻게 시대와 싸우고 결국 자신의 길을 선택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여정입니다. 두 인물의 비교는 영화가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인 '인간의 존엄성과 선택의 힘'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켜주며, 이는 관객이 역사와 인간을 함께 성찰하게 만드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합니다.